워케이션에 진심인 편

원루프제주 워케이션을 다녀와서 - 5일차

데브마이너 2023. 3. 10. 18:28

5일차에 들어섰을 때, 그 기분은 뭐랄까. 결코 해본적은 없지만, 단식 수행의 정점을 지나 회복하는 단계를 거치는 기분이랄까? 마치 4일까지 단식의 정점을 경험하고 난 뒤 보식을 하며 다시 현실에 적응 하기 위한 준비 과정을 겪는 듯 했다.(해본적은 없지만 단식에 관심이 많아 찾아본 적이 있는데 그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그 전날까지 경이로운 경험과 내면의 감정에 충실하면서 모든 상황을 거부감 없이 온전히 받아들이며 즐겼던 것 같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느낌도 받았고, 다른 삶을 사는 듯한 착각에도 익숙해졌다. 덕분에 반 자연자유인이 되어 있었고, 이런 모습이 오랫만에 만난 가족들이 보기엔 생소했었나보다.

 

사연은 이렇다. 주말을 맞아 아내와 아이가 나를 보러 제주로 여행을 왔다. 온전한 체험 학습을 겸한 모녀의 여행이었다. 출발전에 이미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사항이었다. 이제 내가 워케이션을 하는게 어떤 것인지 쯤은 가족도 이해하고 있었고, 나는 안중에 없이 그저 제주도라는 단어에 꽂혀 나랑 상관없이 여행을 계획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 워케이션을 계속 이어가기로 했고, 아내는 용두암 근처에 있는 라마다 호텔을 따로 잡았다.

 

그리고 그날이 왔다. 이들을 맞이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본능적으로 아드레날린이 분출되기 시작했고, 잘 모셔야한다는 생각이 앞 섰다. 가장의 본능이란.... 

 

미리 렌트한 차를 픽업해 도착 30분 전부터 제주 공항의 도착지를 맴돌았다. 기껏 내려서 제주의 찬바람을 맞으며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1분 정도의 시차가 발생했고, 게이트에 먼저 나와 있던 나의 사랑스러운 가족은 반가운 재회보다는 평소답지 않은 나의 실수에 적잖히 당황한 기색으로 트렁크에 짐을 싩고 차에 올라탔다.

차 안에선 조용하던 내 일상에 갑자기 여러 언어가 교차되었다. 익숙했지만 잊어버리고 있던  대화들이 재개되면서 가족의 합류를 실감했다. 잠시 어지러움을 느꼈으나 어느새 익숙해졌다. 호텔에 체크인 하려면 아직 시간이 남았고 그래서 북동쪽으로 펼처진 해안로를 따라 성산일출봉으로 향했다.

 

한반도에 태어나 동, 서, 남쪽으로만 펼쳐진 바다를 보았지, 북쪽에 위치한 바다를 본적이 없었음을 실감했다. 남쪽에 떠 있는 햇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집어삼킬듯 다가오는 파도는 그 속살이 훤히 보였다. 원채 투명한 바다이기도 했지만, 너무나 생경한  그 모습은 지금도 떠올리며 눈을 감게 만든다.

성산을 향하는 동안 성산일출봉을 가는 것에 대해 아내와 논쟁했다. 나는 누구나 다 가는 제주의 명소를 굳이 이 때 가야겠느냐고 시간이 아깝지 않느냐고 했다. 이건 여행이 아니라 관광이라고도 했다. 나의 이런 주장은 일상적인 제주를 일관되게 느껴보고 싶었던 나의 바램에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세계 7대 자연경관인 이곳을 폄훼하느냐며 맞섰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한 순간 아내가 옮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렇게 장관이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가슴이 뻥뚫리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인생에 한번은 가보지 않으면 안 될 만한 곳이었다. 덕분에 아이와 좋은 추억을 사진으로 남기며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동문시장에 들러 먹거리를 샀다. 제주도 사람들은 다 여기와 있는 듯, 빼곡한 인파 속에 크랩과 불쇼로 유명하다고 알려진 맛집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렌트한 차도 반납해야 해서 후다닥 불쇼 구경하고 살 것 사고 호텔에 모녀를 내려준다음, 근처 이마트에 렌트차량을 반납하고 킥보드를 타고 호텔로 들어왔다.

 

가족과의 반가운 재회를 축하하며, 반가운 축배를 들었다. 물론 축배만 든 것은 아니었다. 제주도에서 각자 지내기로 한 만큼 각자의 일정에 충실하자고도 하였고, 잠시 섭섭한 내색을 하기도 했지만 나의 지난 워케이션의 경험담을 풀면서 가족의 이해를 구했다.

 

원래는 저녁을 먹고 나는 숙소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오랫만에 가족을 만난터라 재회의 시간이 길어져, 마침 더블, 싱글 베드로 된 객실이었던 터라, 아내는 아이와 한 침대에서 자고 나는 싱글 침대에서 잤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일찍 깨 잠을 못이루다가 동틀 무렵 숙소로 복귀했다.

 

이하는 새벽에 잠자리에 일어나 썼던 글로 그날을 마무리 한다.

새벽 3시 40분. 끝없는 상념과 함께 한번 잠에서 깬 이후로 잠을 못 이루다.

워케이션 장소에서 아내의 출현은 잊고 있었던 여러가지를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시끌벅적함에 처음엔 어떤 삶의 고단함이 다시 찾아 온 것 같기도 했다. 아내는 내가 여기에 와서 감을 잃었다고도 했다. 농담으로 한 말이었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가족과 잠시 떨어져 지냄으로서 본래 잊고 있었던 나를 찾았다는 방증 같기도 했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인생은 고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이 상황은 나를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하나의 자극제이기도 했다. 가족이 어떤 불편한 존재라는 게 아니라. 인간에 있어서 삶의 완성을 이루는 하나의 시스템인 동시에 인생에 필연적인 고를 수반하는 당연한 것이다. 그것이 나를 자극하고 끊임없이 일깨우고, 삶에 대한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그런 존재일 수 밖에 없다.

이 몇 일 사이 워케이션을 지내면서 밤잠을 못이루는 상념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다 내려놓고 단순하고 홀홀히 살아가는 어떤 다른 측면의 인생을 잠시 마주했던 것이고, 또 그것이 수반하는 여러가지 감정선과 행동양식이 변화된 것을 스스로 관찰하며 다른 차원의 이해를 일으키고 경험하게끔 만들었다.

지난 몇 일이 그랬다면, 지금은 긴장감 있는 삶의 필연성을 상기하고 그에 응전하는 마음자세 같은 것이 다시금 생기는 상황이다. 인생의 현실. 부양할 가족이 있음에 그것이 전혀 부담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그로 인해 나란 존재의 당위성과 목표가 성립되는 것이니깐. 일말의 목표와 실현 계획에 불을 지피게 된다.

잠시 다른 삶을 살았다는 것 정도. 그거에 감사하며 다시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 워케이션은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하나의 구실이 되어줄 수 있다. 나는 여전히 일을 해왔고, 과업을 달성하면서 다른 경험을 동시에 이루었다. 내일, 아니 사실상 오늘 그 실현의 구체적인 점검과 확인이 있을 예정이다.

2시간 뒤에 그것은 다시 시작된다. 잘 일했고 잘 쉬었기에 이제 일상으로 잘 복귀한다.

워케이션에 대한 의미부여를 애써 쥐어짜며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그것이 일이 되면 안된다. 솔직하게 있는 그래도 드러내고 그 자체를 즐길수 있어야 온전한 워케이션이 될 것이다.

오전 6시 숙소 복귀. 씻고 주변 정리 및 일거리 챙기기
오전 9시에 쏘카 두 번째 대여.
오전 10시 아침식사 일정 정검.

바깥에서 일할 수 있는 장소 미리 확인, B프로젝트 데브옵스 도구 설치 및 설정 마무리.
오후 9시 차량 반납. 맑은 정신 유지. 숙소 복귀, 짐 챙기고 정리
다음날 10시 이르면 9시 킥보드 반납.
서울 상경.

텐션 유지하자. 이 정도는 즐겁고 가벼운 스트레스에 불과하다. 원래의 삶으로 복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