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케이션에 진심인 편

원루프제주 워케이션을 다녀와서 - 4일차

데브마이너 2023. 3. 10. 17:14

워케이션 4일 차는 제주에서의 평일을 무사히 마치고 딱 중반에 이르러 맞이하는 주말에 대한 것이었다. 일과에서 벗어나 싱글의 자유로움을 만끽했던 때가 아닌가 싶다. 4일 차의 기록을 찾아보니, 다시 정리할 필요도 없을 듯하여 그대로 옮겨 본다. 4일 차는 그렇게 마음껏 제주도를 나만의 방식으로 누렸던 것 같다.

 


 

일주일의 워케이션 여정의 한가운데에 들어왔다. 극, 소설로 치면 클라이맥스로 치닫기 전야이다.

여유 있는 토요일이라. 조금 늦게 일어났다.

 

40대 독신남의 여유랄까. 어제는 새벽에 제대로 잠자리에 들지 못했다. 중국음식을 배달해 먹었던 나머지 너무 짰었나 보다. 한밤 중 목이 말라 편의점에서 사 온 1리터짜리 시원한 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더니. 엄청난 각성이 되는 바람에, 그래서 우연하게 알게 된 우주전쟁 외국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좀비, 바이러스, 재난, 외계인 침공류의 영화는 다 찾아보는데, 미래에 대한 대비책도 세울 겸, 인간군상의 모습과 그동안 쌓아 올린 가치의 허망함과 그 속에서 진정한 인류의 가치가 무엇인지 탐색하는 과정을 즐기는 편이다.

 

오늘 아침. 일어나서도 잠시 그런 생각을 했다. 이 비싸고 짧은 기간이 주어진 제주에서 난 무엇을 얼마나 추구하고 경험해야 그 값어치 있는 경험을 건질까? 다른 인플루언서나 여행가들이 다루는 제주의 어트랙션을 찾아서 일일이 답사해 보는 게 맞는 걸까? 

 

그동안 제주는 그저 휴양 중심으로 찾다보니, 거의 항상 중문에 있는 호텔 등에 머물렀는데, 결혼 초반일 때 섭지코지, 마라도, 성산 등 그 주변을 열심히 돌아다닌 거 빼곤, 호텔을 벗어나 본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는 제주 표선 출신 지인은 중문은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도 한다. 이건 마치 과천이나 용인 살면서 서울랜드 혹은 에버랜드 한 번도 안 가본 것과 비슷하지 않나.

 

그냥 태어난 곳이 제주라서 그게 너무나 당연해서 전투적으로 그 주변을 탐방하거나 찾아다니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일상이라, 굳이 찾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지인에게 미지의 곳인 그곳은 탐험과 탐방의 대상이 된다. 그렇게 양극화된 각자의 경험들을 한데 모아놓으면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감흥 없는 제주가 누군가에게는 평생 살면서 잊지 못할 추억으로 자리하게 된다니 이 아이러니는 무엇인가.

 

결국, 삶에 임하는 자세의 문제 아닐까? 그저 그 위치에 속해 있거나 지명을 너무 잘 알아서 내겐 너무나 익숙한 나머지 잘 알고 있다는 생각에 그냥 지나쳐버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그 속에서 디테일을 찾고 가르고 갈라 그 속살의 면면을 파헤치고 오감으로 체험하고 맛보며 내재화한다.

 

제주의 맛, 그 중간적인 건 어떤 것일까?

 

제주의 흐리고 비 오는 날씨에 킥보드 일주일치 사용권을 구매해 놓고 첫날엔 체념했었다. 첫날엔 우산을 쓰고 잠시 잠깐 돌아다녔는데도 신발 안으로 물이 스며들어 양말이 젖어버렸다.

 

그런데 다음날은 오후가 되어서 날은 흐리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그래서, 오후쯤 숙소 주변을 한껏 돌아다니며 구석구석을 담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차도 아니고 도보도 아니고 이 어중땐 킥보드는 여행과 일상의 중간 즈음에서의 체험을 가능케 해 준다.

 

현재까지 대체로 흐린 날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래서일까? 더 마음이 평온하고 여유가 생긴다. 어떤 클라이맥스로 향해가는 기대를 하기보다는 그냥 쫓기는 마음 없이 여유로움 혹은 제주에서의 일상이라는 호사를 누리고 싶을 뿐이다.

 

언젠가 개그프로에서 플렉스 한다며 츄파춥스 포장지를 까서 한번 쪽 빤 다음에 휘리릭 던져버리던 장면이 오버랩된다. 

 

지금 이후로? 모르겠다. 그냥 빈둥빈둥 대다가 갑자기 마음 동하면 움직이겠지. 제주에서의 주말이잖아. 플렉스 하자고.

 

40대 독신남의 삶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 여유만 있을 줄 알았는데, 해야 할게 은근히 많다. 갓 이사 온 40대 독신남이 해야 할 일은 청소와 빨래, 그리고 쓰레기 분리수거, 그리고 식사 해결이다. 보통은 아침 식사를 안 하는 편인데 오늘은 동네 가게에서 사둔 라면을 끓여본다. 아침부터 제주에서 라면을?

 

뭐 어떤가. 이런 것도 플렉스 축에 끼지 않나? 심지어 택배로 방문할 사람도 없다. 여긴 배달도 시키고 택배도 오고 하던데, 난 초짜니깐.

 

그러니까 워케이션도 좀 해본 사람이 잘할 것 같다. 난 아직 그 수준에 이르지 못했다. 워케이션계에도 프리급 익스트림급이 있다고 생각한다.

 

뭘 해야 한다는 강박이 그걸 참음으로 해서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다.

 

그 기분을 알겠는가. 그간 1분 1초가 아까웠던 제주의 생활을 그렇게 느끼지 않고 편하게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딱 중간이 워케이션이다!

 

제주도 고기국수와 담판을 짓기로 마음 먹었다. 개인적으로 결과는 효퇴고기국수 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