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케이션에 진심인 편

삼척쏠비치 워케이션 2일차

데브마이너 2023. 1. 28. 00:30

2박 3일 중 2일째.

 

 

 

 

워케이션이라고 이름 붙이고 온전히 보낸 하루였다. 그 결과는?

 

이름만 붙인다고 워케이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몰랐다. 나는 체험도 하기 전에 워케이션에 '답정너'를 붙였다. 몇 가지 허들이 존재하지만 나름 워케이션에 대한 철학을 견지한 상태에서 직·간접적인 워케이션 경험으로 자신감이 뿜뿜이었던지라, 결국엔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다. 1일차 새벽에 있었던 개발환경 장애 에피소드 등은 드라마틱한 전개와 더불어 워케이션 스토리텔링에 좋은 소재가 될 수도 있으리라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회한과 눈물이 서리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약간의 열패감과 가족에 대한 미안함으로 가득 찼다.

 

결과적으로 일은 열심히 했지만, 완전한 몰입은 불가능했으며, 성취에 따른 기대감보다는 쫓기는 느낌으로 일을 마무리지어야 했다. 이로 인해 새롭게 얻게 된 교훈은 휴가워케이션을 구분 짓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객실 내 작업공간에 파묻혀 업무에 열중하면서도 기대했던 것들 중 하나는 일하는 중에 간간히 가족과 함께 시간을 가지며 추억을 쌓는 것이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 찍은 사진을 찾아보니 허탈했다. 가족 모두가 함께 찍은 사진은 손에 꼽을뿐더러, 나를 빼고 나들이를 다녀온 모녀의 사진엔 내가 모르는 낯선 장소와 공간들 뿐이었다. 아울러 내가 빠진 사진들은 아름다웠지만 쓸쓸함이 묻어났다.

 

확실히 워케이션은 휴가와는 다르며 다른 차원의 마음가짐을 가지고 임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워케이션을 완벽하게 경험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준비와 완벽한 환경이 필요함을 느낀다.

 

이에 따라 워케이션이 갖춰야 할 조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첫째, 휴가라는 단어를 워케이션에 붙이는 건 좀 더 생각해보자. 

 

나는 워케이션이란 단어를 처음 접하고 나름의 호감이 결부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워케이션의 묘미를 전파하며 공감을 얻고자 한 적이 있었다. 직장동료나 사회친구 등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나의 워케이션에 대한 열정과 미래의 그림에 대해 어설프게 공감을 표하기도 했지만, 가까운 사람들은 솔직하게 워케이션에 대한 자신의 저항감을 표현했다. 그중 가장 큰 저항은

 

"일은 일이고, 휴식은 휴식이야!"

 

였다. 나는 그때, 딱히 적절한 논리를 펴지 못한 채 이렇게 대변했다.

 

"네가 몰라서 그래! 그건 직접 경험해 봐야만 느낄 수 있어."

 

근데, 이번에 체험하면서 알았다. 그냥 경험해 본답시고 워케이션이란 단어 끌어들여서 함부로 시도했다간 남는 게 없다는 것을... 워케이션과 휴가는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며, 이건 마치 피트니스센터에서 따로 PT를 받는 것처럼 체계적인 환경과 계획을 필요로 한다고 본다. 이를테면 목표한 계획에 따른 일정 정도의 기간이 확보되어야 하고, 일과 휴식시간을 분리해야 하며 그 공간도 마찬가지다.

 

나의 패착은 위의 조건을 무시한 결과에 따른 것이었다. 첫째 날을 돌이켜보면 하루종일 운전을 해서 도착해 저녁식사 시간을 얼마 남기지 않은 상황이었고, 여독이 쌓인 채로 짐을 풀고, 작업 환경 세팅을 하고나니 거의 남아있는 텐션이나 머릿속 맑음 따윈 없었다. 결국, 도착 당일은 '먹고 즐기자 모드'로 셋팅한 채 가족과 바로 저녁식사를 하러 갔다.

 

저녁식사를 하러 가서는 알코올을 곁들인 식사를 했고, 이후로 가족이 다 같이 오락실에 가서 게임도 즐기고, 주변 야경, 정취를 즐기다 돌아와선 뻗어버렸다.

 

그렇게 다음날 새벽 목마름에 일찍 일어나 바깥의 정취를 잠시 즐기곤, 업무를 시작하려다가 장애에 부딪혀 시간을 소요하고 말았다. 그것이 해결되었을 땐, 긴장감이 풀림과 동시에 충분한 휴식이 이뤄지지 못한 채로 피곤함을 느껴 다시 잠자리에 들었으며, 비몽사몽 뒤척이다가 아침을 맞이했다.

 

 

어중간한 시간에 깨어난 이후론 일출을 즐길 겨를도 없이, 밀려오는 전화와 업무 동기화 때문에, 식사도 거른 채 업무를 시작해야만 했다. 아내와 아이에게는 따로 식사를 하라고 등 떠... 독려하고 객실 밖으로 몰아내곤 나 홀로 남았다. 오후 2시 정도에 아이와 워터파크에서 같이 놀기로 했던터라. 그 안에 일을 마치겠다는 목표로 정신없이 일했다. 하지만 빠듯한 오픈 일정 속에서 개발을 진행하다 보니, 테스트를 충분히 못한 상태였고, 분주한 개발 작업으로 채워졌다.

 

일을 하던 중간에 잠깐 나와서 워터파크에 잠시 들러 가족과 함께 하면서도 계속 머리속에는 일 생각 뿐이었다. 일을 하다 말고 밖으로 나와 주변 경치를 감상한다거나, 가족과 함께 인근 관광지로 나들이를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내와 아이는 아침식사를 하고온 뒤로도 계속 의지와 상관없이 바깥을 맴돌았고, 나는 점심시간조차 거른 채 일에 몰두해야 했다.

 

 

반면에 아내가 찍어서 보내온 사진은 다양했다. 맛있는 식사 자리에서 찍은 사진도 있었고, 이름 모를 백사장과 해변, 그리고 야경 등이 있었지만 난 모르는 곳이었다.

 

둘째, 워케이션은 워케이션에 어울리는 장소가 따로 있다. 일반 호텔은 아닌 것으로...

 

솔직히, 쏠비치 삼척은 업무나 휴가로도 몇 차례 가본 곳이기도 하고 풍광도 좋아서 그야말로 일과 휴식을 겸하는 워케이션 장소로서 괜찮을 것이라 기대했다. 도착하자마자 괜찮은 객실을 배정받을 수 있었고, 개발장비를 세팅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기 때문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놓친 것이 생각났다. 바로 멀티탭이었다. 노트북 두 대에 , 결제 테스트 장비 두 대, 그 밖에 충전기 등을 사용하려면, 한 곳에서 쓸 수 있는 멀티탭이 필요했다. 하지만 짐을 싸면서 챙기지 못한 터라. 두고두고 아쉬워했으며, 결국, 근처 편의점에서 다소 비싼 가격에 확보를 하게 되었다. 호텔/리조트 내에서는 규모가 있는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었지만, 멀티탭은 팔지 않고 있었다.

 

물론 내가 사전에 잘 준비했으면 될 일이다. 그저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처럼 호텔이나 그 주변에는 워케이션과 관련한 인프라나 구비해 둔 비품이나 장비 등이 없기 때문에, 혹여 완벽한 준비 없이 갔다가는 일 자체를 그르칠 여지가 있음을 얘기하고픈 것이다.

 

호텔 주변부를 보더라도 가족단위 휴양 중심의 컨셉으로 지어진 카페와 놀이시설 외에 업무를 염두에 둔 시설이나 환경은 없었기 때문에 업무를 가져가서 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아울러 호텔 내 객실 인터넷의 경우 보안에 열악한 개방형 와이파이를 제공하고 있었기에 보안상 취약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호텔 내 식음료의 가격이나 숙박비, 그리고 빡빡한 예약현황을 봤을 때 워케이션을 위한 장기간 체류가 쉽지 않다는 점도 워케이션과 거리가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 밖에 몇 가지 더 있지만, 차차 다루기로 하고... 호텔이나 리조트가 워케이션이 지닌 매력을 인지해 수익성을 염두에 둔다면 앞서 언급한 에로사항에 대해 재고되고 해소될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요원하리라 생각된다.

 

어쨌던 개인적인 열패감 뒤에 나름의 소중한 경험과 배움을 얻은 것은 긍정적인 성과라고 하겠다. 착한 아내와 아이는 나와 함께할 수 있었음에 그래도 즐거웠다고 말해주니 감사한 마음이다.

 

그리고 나 홀로 셀프 워케이션을 치르면서, 그 동안 직·간접적으로 워케이션을 접하게 해준 여러 분들과 팀의 노고가 떠올랐다. 워케이션 생태계를 만들고 도전하는 분들의 노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아울러 워케이션에 진심인 대다수 선험자들의 역할이 기대가 된다. 이들로 하여금 워케이션 생태계 속에서 새롭게 벌어지는 일들과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심어린 체험담과 개선점을 공유하며 발전시켜나가는데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이기에 앞으로의 워케이션에 대해 더 큰 기대를 실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