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케이션에 진심인 편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것은.

데브마이너 2023. 7. 15. 06:02

2주 차 주말에 개시해 보는 아침운동.

 

5시 반에 절로 눈이 떠진 나는 평소의 루틴을 수행하려다가 문득, 어제저녁 달품의 해안가를 트래킹 하면서 즐거웠던 한 때를 떠올렸다.

맛있는 저녁 이후 다 같이 앉아 담소를 한참 나누었음에도 배는 꺼지지 않았다.

 

이대로 잠자리에 들면 아쉬울 것 같은 마음에 저녁 운동을 하려는 선영님을 따라 다 같이 트래킹에 나섰는데 기대치 못한 해안가 야경과 몽돌이 파도에 휩쓸리며 내는 고색창연하고 이색적인 사운드에 이끌려 아침 운동을 결정하게 된 것 같다.

 

옥상에 올라 날씨를 확인하고, 방향을 정하는 데 문득 반댓길로 가보고 싶어졌다. 가지 않은 길을 가는 건 나의 본능이다. 저절로 향하는 발걸음에 의지해 몸을 맡겼다. 

 

달품을 등져 걷다가 문득 그 생김이 궁금하여 뒤돌아보았다.

 

보는 순간 떠오른 생각은

 

"응? 이렇게 작았었나?"

 

였다.

 

한 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처음 달품을 마주 했을 때를 돌이켜 보았을 때는 이런 느낌이었다.

 

"어 생각보다 작네?"

 

였었다.

 

그러니까 처음 내가 달품을 접했을 때 공간과 외형에 대해 받았던 첫인상은 상상과 기대와는 좀 달랐다.

이를테면 생각보다 건물이 작았다. 

 

내가 상상하고 있던 달품은 훨씬 큰 공간이었다.

 

왜냐하면 "남해바다 달품 워케이션"에서 탄생한 스토리와 많은 사람들이 애정하고 교류하는 규모를 보았을 때, 가히 어느 정도의 규모 있는 공간이 예상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경험이 부족한 탓일지 모르겠으나, 보통 네트워킹을 하거나 컨퍼런스 혹은 모임을 가졌을 때 경험하던 것과는 좀 달랐기에 살짝 당황스러웠다고 해두자.

 

그런데 지금 다시 보는 달품은 같은 공간이고 외형이지만 또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어느덧 이곳에 녹아들어 꿈을 꾸는 듯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는 듯했었고 그렇게 지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돌아본 모습에서 그와 같은 느낌을 받은 것이었다.

 

1972년 12월7일 아폴로 17호 우주비행사들이 찍은 지구 사진 ‘블루마블’. 나사 제공

우주에서 바라보는 아름답고 작은 지구 모습의 생경함에 빛대는 건 오버인가 싶지만, 그저 진솔한 나의 느낌이다. 같은 느낌이지만 기인하는 바가 달라져서 또 놀라게 되는 그런 느낌을 일상에서 접하긴 쉽지 않다.

 

그 찰나도 잠깐이고 나는 곧 강수님이 어제 알려준 월포해수욕장 끝자락에서 홍현마을로 향하는 남파랑 바래길을 앞두게 되었다. 숲으로 이어지는 그 길은 오르막인 데다가 산속을 향하고 있어서, 그 난이도를 예상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뒤에 나타날 경치를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걸었을까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을 저버리지 않고 기분 좋은 풍광이 눈앞에 펼쳐졌다. 프라이빗

해변에 온 느낌이랄까? 해안가보다 맑고 깊은 바다가 깊은숨을 들이마시게 해 주었다. 숨어 있는 공터가 눈에 띄었는데, 주민 체육 시설인가 싶기도 했는데 낡아있고 방치되어 있는 느낌도 들었다. 이런 곳에 워케이션 센터 하나 차려놓고, 자발적 유배를 한다면 더 없이 생산성이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가지 않은 길이 나에게 주는 기대감과 도파민을 쫓아 계속 길을 따라갔더니 나오는 고즈넉한 마을. 해안도로도 아닌 바래길로 들어선 마을은 느낌이 새로웠다. 바람에 일렁이는 논밭뷰가 흐린 하늘에서 시선을 거두게 해 주었고, 솔솔 부는 바람에 청량감이 느껴졌다.

 

농수로를 따라가다 보니 새로운 해안가가 나타났는데 그 역시 차로 쉽게 찾아들어오기 힘든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복잡함 없이 단출하고 깔끔한 몽돌해변에서 넓게 트인 바다를 또 바라보았다.

 

경치를 감상하며 길을 걸으며 오롯이 사색하며 많은 것들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정리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에 있어서 그 용기와 도전을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고, 진정성을 갖고 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돌아보았다.

 

누군가가 만든 이 길을 걸으며, 길이 있기 전 이 길을 생각해 보았다. 그저 깎아지른 듯한 절벽 산길 아니면, 비포장 농로에 불과했을 텐데 누군가의 상상으로 길이 조성되고 이제 그 길을 사람들이 밟고 있다.

 

인스타, 소셜 미디어용으로 범람하는 상업적인 가게 속에서 아름답게 찍힌 사진을 보며 추억하는 것도 만족스럽긴 하지만, 그 사진이 품지 못한 사진 밖 풍광을 기억 속에 담아낼 수 있다면 좀 더 의미가 클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만큼 값진 경험과 스토리를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 그리고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을 겸비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긴 사색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자연스럽게 풍광이 바뀌었다. 

이름 모를 동네 강아지가 아침운동을 나왔다나 나를 반겨주며 졸졸 따라오기도 하고

 

 

방풍림이야기가 담긴 홍현마을도 둘러보았다.

 

간간히 햇살을 드러내는 하늘과 그 하늘에 환하게 반응하는 사물들.
내가 목마를 줄 알고 동네 우물가도 안내해주는 동네 가이드 강아지야. 고맙다

 

 

만족스럽고 알찬 아침 트래킹을 마치고 달품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컷.

전혀 생각지 않았고 기대하지 않았던 길을 간 것은 참 잘한 일 같았고, 사색의 시간은 잘 갈무리해서 내 인생 앞날의 자양분으로 써보고자 하는 의지를 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