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케이션에 진심인 편

원루프제주 워케이션을 다녀와서 - 1일차

데브마이너 2023. 3. 7. 05:00
원루프랩 제주를 통해 워케이션을 다녀온 뒤로 2주 정도 지난 것 같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 수 있는 일주일.

 

이번 워케이션 기간 동안 개인적으로는 많은 경험을 했고 더 큰 인사이트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워케이션을 좀 더 큰 틀에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까?

 

그 틀의 크기만큼 쌓인 경험과 감정을 어떻게 정리하고 풀어낼 것인가 하는 고민이 뒤따랐고 이로 인해 스스로 예정했던 워케이션에 대한 감회를  정리하고 쏟아내기까지 다소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는 동안 집 근처에 마련한 나의 업무용 작업실은 완성이 되었고, 이제 그곳으로 매일매일 출근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서야 돌이켜 음미를 해본다. 내가 택한 길로 인한 여정의 변화를...

 


 

 

제주워케이션은 나에게 잠시 잠깐 완전히 새로운 삶을 선사해주었다. 워케이션을 시작한 첫날부터 일시에 40대 독신남이 된 듯한 기분이 드는 가운데, 그 낯설고도 익숙한 감정을 헤아리는데 시간이 다소 소요되었다.

 

tvN 에서 방영한 타임슬립 드라마 '아는 와이프'

 

사회 초년생 자취방의 추억이 잠시 스치기도 하고, 드라마나 영화로 봤던 타임슬립물이 전개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어느 드라마에서처럼 아내도 가족도 완전히 바뀐 새 삶을 사는 건 아니었지만(그건 생각만 해도 슬프고 끔찍하다 ㅠ, 아내 보고 있지?🤣), 가족과 잠시 떨어져 내가 살던 곳과 가장 먼 외딴곳에서 홀로 다른 인생을 구가하는 경험을 평생에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워케이션의 묘미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첫날 제주의 워케이션 숙소에 들어섰을 때의 기억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생생하다. 맑았던 서울과 달리 하늘길을 날아 내려온 제주는 기상청의 날씨 예보대로 비가 오고 있었다.

 

제주 공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원루프랩 건물에 당도했을 때는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잠시 주춤하던 때였다.

일주일을 온전히 보내기 위한 짐으로 가득 찬 커다란 캐리어를 이끌고 낯선 건물 안으로 들어가 온돌방의 온기를 머금은 숙소에 안착했을 때의 그 안락함과 고요함. 그 뭉클한 설렘을 느끼며 그 현관 입구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렇게 서 있는 것도 잠시. 흘러가는 시간을 자각하는 순간부터 현실로 돌아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가져온 짐을 새로운 공간에 배치하고 일할 공간에 노트북 컴퓨터와 휴대용 모니터를 올려놓고 케이블을 연결했다. 익숙한 작업환경을 빼곤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진 내 주변...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눈앞에서 다른 모습이 펼쳐지기 시작했고 뜬금없이 '새로운 서식처'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 약간의 동물적인 어감. 그것은 뭐랄까? 살짝 자연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들면서 와일드한 생존에 직면한 느낌이랄까?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나를 모르고 나도 주변 누구도 모른다. 나는 새로운 사람이 되어 이곳 환경에 익숙해져야 하고, 일주일을 살아야 한다는 일말의 도전과 책임의식이 차올랐다. 사회초년 시절 오피스텔 자취방에서 홀로 시작하던 시절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그러고 나서 눈에 들어온 것은 드레스룸과, 수납장, 그리고 주방용품 및 청소도구. 일상에서 들여놓을 것과 그것을 소비하고 배출할 것들을 확인하는 것이 갑자기 중요하게 느껴졌다.

 

물론 이미 깨끗하게 비워지고 정리되어 있는 숙소였지만, 내가 있을 공간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를 중심으로 한 내 기준의 환경과 쾌적함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이 이 새로운 환경에 빨리 익숙해지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반의 반나절은 그렇게 짐 정리를 통한 집안 구조와 동선 파악으로 이어졌다. 

 

 

그 끝에 찾아온 여유와 적막감. 다시 한번 창밖을 내다보았다. 오늘 빼고도 6일의 시간이 더 남아 있다는 안도감과 여유로움. 그리고 아직은 어색하지만 나를 일주일 동안 비와 바람으로부터 보호해 줄 이곳에 대한 기대감으로 점차 설레기 시작했다.

 

 

오후 4시가 되자 전화벨이 울렸다. 제주도에 내려오기 전에 예약해 둔 EVPASS 전동 킥보드가 집 앞에 당도했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하루 전날 밤. 제주에서 지내면서 이용할 대중교통과 이동수단에 대해 고민하다가 일전에 텀블벅에서 발견한 제주도에 근거지를 둔 제주 리(워)케이션 업체의 프로젝트를 후원하면서 확보하게 된 일주일 이용 할인권이 갑자기 생각나서 급하게 신청해 둔 터였다. 성능 좋고 배터리 빵빵한 전동 킥보드를 받고 나서야 워케이션을 시작할 만반의 준비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홍랑길 15

 

 

지금도 기억하는 '홍랑길 15'.

 

그간 중문 같은 제주도의 휴양지만 다녔지, 시내 한복판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많이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제주도 시내에 위치한 이곳은 위치만 바뀌었을 뿐 서울의 길과 건물, 그리고 동네의 모습이 크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맑은 공기가 신선했고 그렇게 높은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덜 북적거리는 느낌? 그래도 차는 많았던 것 같다. 이 한정된 섬을 돌아다니기 위해 그 많은 차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잠깐 신기했다.

 

 

비로 적셔진 길을 따라 동네 주변을 탐방하며 이용할 편의점과 식당을 찾고 길을 익혔다.

어느덧 해가 저물어 어둑해지자, 편의점에 들러 맥주 몇 캔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강연/세미나에 참석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미나는 밤 10시까지 이어졌고, 그 사이에 홀짝거린 맥주로 몸도 마음도 편안해진 가운데 제주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어렵지 않게 마칠 수 있었다.